“고마해라 마이 무우~따 아이가”….진한 부산 사투리 입니다. 10여년전 ‘친구’라는 영화를 통해 널리 유행되던 말입니다.
번역하면…. “그만해라 많이 먹었지 않냐?”입니다 어릴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형제처럼 함께 자란 친구가 조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한 친구의 배신, 그 배신자를 친구가 직접 응징하는 그런 설정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위의 이 대사는 극중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친구로부터 응징당하는 조폭이 했던 말입니다. 흉기로 자신을 계속 찌르는 친구에게 이름을 부르며 “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하고 숨을 거두면서 말입니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이 대사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이유가 아무리 조폭이지만 마지막은 친구로 기억하고 싶다는 그래서 친구라는 우정이라는 것은 죽어가면서도 지킬만한 가치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조폭을 미화하는 측면이 강한지라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진한 사투리가 사람들의 입에서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터라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요즘, 교회가 많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참 아픈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목사의 부도덕, 교회의 다툼, 비 상식적인 전도방법과 사이비적인 은사의 부작용, 언행의 불일치 등 교회가 욕을 먹고 비판을 받을 만한 여러 이유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일들은 교회가 자신을 살피고 고치고 회개하고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해야 할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 생각해보면 교회 내부 사람들의 비판이 더 아픕니다. 목사가 된 이후로 교회내에서 참 안타까움을 많이 보는데 게중 하나가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고 정죄한다는 점입니다. 신실한 척하면서 인간성이 안믿는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꼭하는 말이 있습니다. 옛적에 자신도 열심히 믿으려고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위의 예수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실망이 커서 포기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참 아프고 안타깝게 들립니다. 교회는 남이 변하는 것을 바라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이 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을 배려할줄 모르고 자기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자신이 남을 배려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비판은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른 교회가 물질중심적으로 살면 우리교회는 그렇게 살지 않고 복음적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부족해 보이면 내가 채워야 겠다고 하면 됩니다. 모두들 교회 식사후 거들떠 보지 않고 다 가는 것이 마음에 쓰이면 내가 팔을 걷어 부치고 들어가서 묵묵히 설거지를 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그렇게 하셨습니다. 길에서 강도만난 사람이 있을 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사마리아 사람이 가서 구해주고 자비를 들여 그를 근처 병원(?)에서 치료하고 숙소로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속으로라도 “아니 하나님을 믿는 인간들이 어떻게 저렇게 모른 척하고 지나갈까… 저러니 안되지…. 남들이 다 그러는데 나도 바쁜데 뭐 내 할일이나 해야지” 하면서 가버린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죽어가는데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구나. 그럼 내가 구해줘야지… " 그것으로 끝입니다. 왜 저 사람은 그냥가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의사가 병든자를 위해서 필요하듯이 자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병든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헐뜯으면서 상대가 더 큰 병이 들었느니 그렇게 싸우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가 더 큰 병이 들었고 게중에는 누가 좀더 증세가 가벼운가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변하면 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주께서 만지시고 고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비난하지 말고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밖의 비난과 몰아부침에 많은 상처를 받는데 교회 안에서까지 서로를 탓하면 서로 힘겨워 질 뿐입니다. 우리교회의 형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가진 문제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잔인하게 핍박하던 사울(예수님을 만나기전의 사도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 사울아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 너의 핍박으로 인해 내가 아프다. 그만하라” 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 예수믿는 사람들인 교회를 핍박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승천하셨는데… 예수님은 왜 자신이 아프시다고 했을까요? 예수님은 교회와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사울아, 이제 그만하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도 아끼신 교회인데 ….. 우리교회라고 이런 문제들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교회이기에 지상의 교회가 가진 거의 모든 문제점들을 우리교회도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문제점들을 그냥 놔두면 교회는 영적인 힘을 잃어 버리고 나태해져 버립니다. 급기야 교회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될지경이 됩니다. 우리교회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문제점을 볼때는 다른 사람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점을 봅시다. 좋은 점을 볼때는 나의 좋은 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며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 상처받고 쓰러지고 넘어지며 다른 사람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을 포기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그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온 세상의 교회는 그럴때가 아닙니다. 사실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닙니다. 나의 신앙 문제가 어찌 다른 사람 탓입니까? 내 탓이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면 본인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고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과 다른 예수믿는 사람들을 욕먹이는 것은 없는지 반성하면 되지 않을까요? 남 탓을 하면서 믿음이 약해지며 자라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근성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근성이라는 말은 좀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냄비근성이니 거지 근성이니.. 그러나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 정성을 다하는 마음 , 뿌리 깊이 박힌 성질” 등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근성이 필요합니다.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나 실망스러운 일이나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도 믿음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부닥쳐서 이겨나가는 그런 질긴 영적근성이 필요할때입니다. 고던 맥도날드라는 분이 “ 영적 성장의 길”에서 말하는 것처럼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중도포기 DNA’ 가 있다고 합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믿음의 길을 송두리째 포기해버리는 그런 유전자들 말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여름 방학에 우리는 이 근성을 기르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교회의 영성이 많이 풀린 느낌입니다. 예배도 그렇고, 성도들간의 교재도 그렇고 개인 영성도 마찬가집입니다. 성경공부나 책 모임이나 새벽기도, 교회봉사들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다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모두 함께 참여하고 세워가는 마음이 아니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가 봅니다. 어떤 성도들에게는 그런 모임이나 봉사가 남의 일로 보이고 소 닭 보듯이 무관심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인 듯 합니다. 이러다 영적인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마저도 듭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함께 주님의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인데 함께 힘을 냅시다. 영적 근성을 기릅시다. 사소한 상황과 한 마디의 말에 픽픽 쓰러지는 그런 냄비 근성이 아니라 어떠한 비바람과 높은 물결과 풍랑 속에도 자신의 신앙성장과 믿음을 지켜나가는 그런 영적 근성을 기릅시다. 중도포기 DNA 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그런 영적 근성을 키워갑시다. 이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그리고 서로 돌아보는 것이 그 훈련입니다. 그래서 8월 한달 동안 그동안 하던 창세기 설교를 멈추고 영적 근성의 훈련을 위한 특별 집회를 시작합니다. 토요새벽기도회와 주일예배 의 8번의 특별집회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는 7월 31일 토요일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벤트가 아니기에 특별한 순서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우리가 기존에 하던 것을 모두가 함께 같은 마음( 영적 내성과 근성이 훈련되고 키워지는) 을 품고 소망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모임과 마음을 통해서 서로 돌아보고 섬기는 분들이 많아질 것이고 또 자연스럽게 모여서 기도하는 모임도 생겨날 것으로 기대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앞에서 사는 삶의 자세와 태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나 기대대로 되지 않아도… 영적 근성과 내성의 성장을 위해 겸손하게 하나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교회는 주께서도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지금이 아니라도 훗날에 열매로 결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집회 마지막은 이희철 선교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Wrap up 을 해 주실 것이기에 오히려 소망이 더 큽니다.
